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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다룰 수 있을까?

애써 결의를 다지는 이유는 뭘까?

흔들리는 생각을 바로잡기 위한 안간힘 아닐까 싶다.

내가 나를 다룰 수 없어서

매번 결심하고 기록하고 위안하고 해석한다.

내가 기쁜 이유는 기쁠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고

타자가 미워지면 미운 이유가 있다고 하고

그 사이 소외했으면서 모르고 지나가고

나의 소외는 엄살피며 동의자를 구하면서 떠들고 다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다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의 이유를 만들어서

결의를 다지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생각보다 타자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다.

기껏해야 역지사지 정도인데 그것조차 결심하고 들여다 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실수하기도 한다.

들뜬 마음을 모두가 축하해주리라 착각하고

타인의 우려와 고려를 귀찮게 여긴다.

어쩌면 나만 그런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긴 시간이 지나고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때

가까스로 알아차린다면

나조차 그렇다면 다수의 그들은 그럴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사유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그들이

어떻게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직감에 귀기울이자.

난 어떤 직감에 의지하고 살고 있는지.

무의식이 가르쳐준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지만

그런거다.

나도 모르는 해방감.

고통스럽지만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자유

잘될거만 같은 생각.

잘살거만 같은 생각

믿으려 하는게 아니고 이게 직감인가.

편안하고 안정되다.

 

어쩌면

난, 그간 느끼고 싶은 것을 맘껏 느꼈고

받고 싶은 것을 맘껏 받았고

내맘대로 잘 살아왔고

근본적인 억압을 버텨왔으며

이젠 그 억압의 고리를 끊을 때가 되니까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되돌아 가라하면

되돌아 가고 싶지 않다.

난 내 인생의 2막을 시작하는구나.

 

자의반타의반이지만

이것이 내 운명인가보다.

 

더이상 악을 쓰며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인가보다.

 

정말 오랜세월을 돌아왔고

남들 다하는 걸 해봤고

고통과 슬픔속에서 성장해왔으며

관계를 밝히느라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

 

그게 힘과 에너지가 되어

나를 받쳐줄거란 믿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