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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기

제대로 마주한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일한다는 건 이런걸까?

함께 일하면서 경험으로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내 경험을 존중받고 싶었던 나를 보았다.

그동안 트레이너로서 자부심은 곧 다른 영역의 사람들의 지적과 비판을 넉넉하게 받아들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난 지적을 받자 곧 자존감이 떨어졌다. 얼마나 쉬이 흔들리고 납작해지던지. 그런 불안정한 나를 보았다.

그동안 흔들리던 후배들에게 했던 코멘트가 얼마나 경솔했던 것이었나를 절실히 깨달았다.

나의 조언들은 그야말로 가짜였다. 난 그들의 아픔을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서야 목표지향적인 사람과 일하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목표지향적이었으나 경험으로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알고 놓아버린 지금에서 가치관이 바뀐 상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열심히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황과 환경 때문에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그것 자체가 나의 능력의 수준임을

인정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가 어렵고 핑계가 있기 마련인데 난 그야말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자리에 앉아서 아주 건조하게 평가하고 자문해왔던 것이다.

그게 부끄러워 오늘 내내 우울했다.

이 정도밖에 안되는 나를 마주하니 아프고 힘들다.

이 나이에 고상함을 그대로 안고 살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했다.

새로움, 도전, 금정, 등에 대한 것을 포기했더라면 난 그냥 이런 아픔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마주하는 게 이렇게 아프다니. 새삼스럽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자극이 되면서도 그저 부응해야 하는 상황이 한없이 나의 자발성을 꺾어버린다. 아. 코넷은 얼마나 인간적이었던가. 코넷은 얼마나 현장중심적이었던가. 새삼 느낀다.

지원조직, 그리고 기획하는 자는 정말 현장에서 멀다.

매트리스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자신감과 추진력이 버겁고 뭔지 모를 서걱거림 때문에 힘들기도 하다. 난 역시 현장에 있어어야 한다.

현장에 있으나 세련되지 못한 것 조차 능력없음으로 치부되는 것이

나 개인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사람 모두를 그렇게 보는 것 같아 억울함이 밀려온다.

너무 오버하는지도 모르겠으나

마을공동체의 설계자들이 오히려 자발성을 떨어뜨리고

현장에 없었으면서 현장을 자문하는 상황을 보면

할 말을 잃는다.

설계자들은 희망을 갖고 왜 계획되로 되지 않는지 자문하고 평가한다.

현장은 그 자문이 억울하지도 않은지 또박또박 받아적는다.

난 현장을 알아버려서 그 억울함을 대리한다.

아! 박원순 시장과 독대하고 싶다.

자발성, 참여,주민주도.... 이런게 왜 설계자들에게 의해 그려져야 하느냐고.